누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가? (버전2)

 

1. 무너진 권위

오늘날 젊은 세대가 교회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권위적인 분위기와 직분의 계급화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고,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듯이, 교회에서도 권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교회에서는 권위를 강요하고, 순종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담임목사의 태도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 교회가 건강하게 운영되려면,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인정해 줄 때 발휘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과 순종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뜻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며,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 우기곤 한다.

담임목사가 자신의 결정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곧 불행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뜻은 개인의 의지나 욕망이 아니라, 성경과 공동체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참된 순종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다.

3. 무너진 권위를 세우려는 어리석음

무너진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억압적인 방식으로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는 강제적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덕과 인품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욕심 없이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부하 직원이든, 성도든,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존경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과거처럼 명령을 내리고, 순종을 강요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4. 리더의 능력보다 신입사원의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

현대 사회에서는 조직 내에서 리더보다 신입사원의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고,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젊은 세대가 더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리더의 경험과 안목이 조직 운영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시각과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젊은 세대의 의견을 무시하고, 권위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점점 더 쇠퇴할 수밖에 없다.

5. 착한 사람이 승리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제는 권위적인 태도보다 도덕적 능력과 양심이 더욱 중요한 시대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권위적인 문화를 버리고, 윤리적이고 선한 가치를 추구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지도자의 인품과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무엇보다 정직하고 투명한 운영이 필요하다. 권위적인 구조를 버리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추구하는 교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결론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권위를 유지할 수 없다.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떠날 것이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교회는 점점 더 영향력을 잃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섬기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이야말로 변화의 때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계획을 다 짜 놓으셨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그건 믿음이 아니다.

막연한 목표 

친구 중에 목사가 하나 있다. 대학시절부터 청년부 활동을 같이 했고 난 중년이 되면 교회 행정을 할 계획이었고 이 친구는 대학을 나온 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둘은 목표를 이루었다. 

하지만 20대의 목표는 막연했던 것 같다.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게 되면 뭘 할 건지 뻔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겠지 했다. 하나님이 왜 우리 둘의 인생 계획을 맘대로 짜서 주신다는 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표를 정했다면 보통은 이룰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 가기 교통 수단 이용해서 가면 된다. 그런데 가서 뭐 할 건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주변에서 얼마나 답답하게 느끼겠는가 ? 

부산에서 계속 살 건지 잠시 여행을 간 건지 답답한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가파도 섬이 있고 그 섬 안에 핫도그 집이 유명하다. 그 주인에게 누군가 물었다고 했다. 어떻게 핫도그 집을 할 생각을 했냐고 그러니 그냥 여행 왔다가 좋아서 여기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 어제 들었다.  누구는 이렇게 즉흥적일 수 있다. 이걸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명과 하나님의 뜻

기독인은 이런 결과를 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멋지게 포장한다. 그런데 확인할 수도 확인되지도 않은 결과다. 장사를 잘하다 망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이라고 성도들이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장사를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당연히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겨도 하나도 안 이상한 것이다. 

그러니 잘 모르겠으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지 말자. 내 뜻인 것이다. 그걸 하나님의 도와 주실 수는 있지만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다. 

책임 안 지려고 하나님의 뜻을 우기지 말자 


믿는자의 인생계획 

믿음이 좋아도 인생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계획은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목표를 정했다고 만족하면 안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는 방법까지도 정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 목표를 이룬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꼭 계획 성공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자라면 하나님의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단계적 과정마다 어떻게 도우시면 개입하시는지 알기 위해서다. 

막연한 계획에는 막연한 성취만 있다. 

20대는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 매우 어려운 시기다. 사회적 경험도 부족하고 조금 뭘 잘하면 교만해져서 못된 태도가 나타나고 조금 부족하면 낙심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도움을 주려하면 자존심이 발동해서 거절하는 한심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인데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매 분기별로 수정하기 바란다. 그래도 괜찮다. 


계획 수정

 인생이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능력은 계획을 세울 수는 있어도 계획대로 이루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계획은 수시로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차선책과 차차선책등 말이다. 그리고 과정에서의 계획까지 말이다. 

이걸 시험해 볼수 있는게 여행계획이다. 특히 혼로 여행을 짜보고 여행을 가보면 얼마나 다양한 변수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을 배우는 첫번째 방법은 그래서 혼자하는 여행이다. 


더 이상 교회에서 배울 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

 더 이상 교회에서 배울 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 


평생을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들었고 성경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리고 교회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지만 요즘 보면 교회에 너무 실망스러워서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넘친다.  


개신교 목사들이 이탈행동

윤석열 비상계엄으로 탄핵 소추되어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 목사들의 행동을 지켜보자니 정상이 아닌 인간들이 이렇게 많은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목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저기 정치적 이념을 내세워 성도를 선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동안 목사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안 할수 없다. 


목사의 자리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수 십년간 잘 먹고 잘 살았다. 특히 자영업자 같은 시스템인 개신교회는 목사가 개척을 하고 헌금으로 교회를 유지해 왔었다.  수십년이 흘러 후임 담임목사가 부임하기도 했지만 30여연간 대형교회로 성장한 많은 교회에서 비리나 터져도 일부겠지 하고 견디어 낼수 있었지만 정치적인 의도로 성도를 이용해 먹는 목사들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소망이 없다는 것을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목사는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잘 연구해서 주일에 설교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 흠이 있어도 좀 부족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덮어주려고 애씀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목사를 욕하면 목사도 사람이니 실수하지 하고 이해 시킬 정도이지 같이 비난하거나 불평하거나 불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설교를 이용한 선동

 목사가 예배 설교 시간에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선동을 한다면 이건 썩을 때로 썩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는 것이 된다. 

사실 극우 성도들이 담임목사를 찾아가서 왜 윤석열 탄핵 반대라고 설교 시간에 말 안하냐고 협박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윤석열이라는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성도와 같을 것이다. 흠이 있어도 잘못을 했어도 이제부터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냐 하면서 옹호해 주는 것 이거 교회에서 담임목사에게 해주던 짓이다. 

그런데 극우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극우 성도들이 이런 짓을 한다. 


잘못을 없다는데 용서를 해준다

 용서는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향해서 하는 것이다.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그냥 내가 용서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묘욕적인 행동이 된다. 

내가 잘못이 없다는데 지가 뭔데 용서를 하냐는 것이다. 


정신 차리자

교회는 많다. 헌금 낼 곳이 없어서 경조사비 낸게 많아서 교회를 못 옮기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젠 좀 교회로 부터 벗어나서 자유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교회는 옮겨도 된다. 헌금은 꼭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은혜는 공짜다. 구원도 공짜다. 그리고 목사도 타락한다. 그러니 교회는 선이고 세상은 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곳이 없어서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하고 목사를 애지중지했따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건 당신 뜻이거나 목사가 세뇌 시킨 뜻이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내 주머니의 돈을 워하시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를 꼭 써야 된다고 했겠는가 말이다. 

모세를 부르시고 홍해를 건너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출애굽기 4장에서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가 먹은 것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죽어야 할 운명이 되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축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죄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신다. 개인적으로 난 바울이 로마에 가서 사형을 받은 것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행한 일들 때문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믿는 자들을 죽이고 다녔던 사울이  그 일을 더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울은 평생을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이는 일만 했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가 모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죄라고 정의한다. 현행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엄격한 하나님의 법은 마음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 죄로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와 목사는 정신 차리자. 벌벌 떨면서 마음으로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불만과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

불만과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

 어느 조직이나 교회도 조직 안의 불만이나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을 당한다. 이유는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불만과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 같은 것이 교회에 해가 된다고 가르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불만이나 불평은 나쁜 기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잖게 표현해서지 악마, 사탄의 주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성도를 나쁘게 묘샤하거나 질책함으로 해서 애초에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이 불만하고나 불평을 이야기 해도  어려서라고 무시하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불만과 불평을 막으면 조직이 행복해 질까? 생각을 해보면 안될까 싶다. 


가짜 행복

 불만과 불평이 없으니 정말 행복한 곳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만과 불평이 없으려면 욕심이 없어야 한다. 기대가 없어야 한다. 희망이 없어야 한다. 행복해 지는가 ? 

불만만 말하는 것, 불평만 하는 것은 정말 문제다. 의도를 가지고 리더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불만과 함께 개선 점을 요구하고 기다린다면 그건 다른 긍정적인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불만만 이야기 하면 안된다. 불평만 하면 안된다. 뭔가 잘못 된 것을 발견했다면 개선 방법을 찾아서 같이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군거림이 아니라 정식으로 토론하고 발전을 위해 나가야 한다. 


개선을 위한 건의 

개선을 위한 건의를 할 때는 내가 먼저 해보고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나는 다이어트 모임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사 수준의 다이어트 이론을 가지고 있고 그걸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자기 것이 아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도 알았다. 

경험해 보고 실천해 보지 않은 이론은 사실 죽은 이론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개선을 건의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천 가능한 것을 실행해보고 차차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써야 한다. 


진짜 행복

욕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기대는 품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은 가능성이 안 보일 때 앞을 빛을 보는 추진력이다. 그럼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가지면 행복할까 ?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인에게 행복이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좌절도 있고 실패도 있겠지만 어느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그동안 의미가 있고 마음의 소망이던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은 걸 행복이라고 한다. 

사람은 기분으로 산다. 그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일 기분이 좋으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욕심이 없고 마음이 선하면 여러분의 마음에 자비가 있으면 내 것을 융켜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면 기분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욕심을 채워서 행복해 지는 것과 작은 도움이라도 남을 위해 베풀 때 행복해지는 것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잠깐 생각해 보면 안다. 

선한 마음은 기분을 좋게 하는 마법이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이러다 목사를 죽여야 교회가 산다라고 외치게 생겼다.

 우리는 교회를 수호하는 군대다 성경에 교회를 수호하라고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린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교회는 절대 망하면 안된다는 생각 말이다. 


순종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이 망해라 해도 절대 안되거든요 할 사람들이 대한민국 교회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명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축복 주시고 복만 주셔야 하나님 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죽어야 할 때도 난 안 죽어요 살려주셔야 하나님이죠 할 사람들이다. 영생을 육신의 영생으로 살겠다고 할 사람들이다. 

 순종이라고는 자기 뜻대로 되야 순종할 사람들이다.  자기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 남의 말 안 듣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하셔서 안 믿는다고 하는 유모가 있을 정도다. 


자기 뜻과 다르면 사탄이라는 주장

다시 말해 내 뜻과 다르면 다 사탄이라는 주장이다. 사탄이 예수님으로 변장해서 나에게 나타났다고 생각할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도무지 말을 안 들을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이야기 해도 소용 없을 것이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 기독인의 현주소다. 

 일찍이 이사야서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라고 말씀 하셨다. 

성경을 읽다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행이 나온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서 우상을 만들고 배신하고 거역하고 반역을 일으키고 자기 맘대로 하고나서 자기들이 잘못한게 아니라고 핑계를 대는지 뻔뻔하기 까지 한 이들을 왜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는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나 같으면 다 죽여 버렸을 것들을 말이다. 

 

미친 기독인 

우린 미쳤다. 무엇이 미쳣냐면 교회에 미쳤다. 교회는 내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절대 틀릴리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목사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믿음이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에 미친 성도는 미쳤다.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교회가 이기적인 집단인지 그 내부에 있으면 모를 정도로 이기적이다. 집단 세뇌에 가까운 맹목적 믿음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시받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믿음이 좋은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속이고 쉽고 가스라이팅 하기 쉬운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 증거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 교회와 손현보 목사의 세계로 교회 일 것이다. 이들이 목사로서 잘못된 길로 가고 인도해도 맹목적으로 따르고 믿는다. 정치적으로 교회를 이용하고 예배를 타락 시키고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도 그들은 의심조차 안하고 맹목적인 충성을 다한다. 이들에게 예수은 두번째다 이들에게 교회의 주인은 목사다. 이들에게 다른 말은 들을 여유조차 없다. 

오늘도 조용히 겸손하게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토요일인데 집회로 모여서 소리소리 지르면 저주를 퍼 붇고  욕을 하면서 선동질을 하고 있는 목사를 보면서 한국교회가 끝나가는 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회를 정광훈과 손현보가 닫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개신 교회도 1인독재를 끝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천주교는 로마 카톨릭은 하나의 교회인 거대한 교회다. 각나라의 천주교회는 다 지부라고 보면 된다. 교황이 통치하고 교황을 선출한다. 

바티칸은 이탈리아 로마 안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다. 이곳에는 교황이 거주한다. 매우 계급적이며 교황밑에 추기경이 있고 추기경은 대주교를 하거나 교황청 고위직이다.  교회는 대주교와 주교가 관할하여 교회를 다스린다.  그 밑에 사제들이 있는 것이다. 


반면 개신 교회는 각 교회의 자체권으로 운영된다. 물론 교단에는 총장이 있고 노회장도 있고  각 교회의 담임자는 노회에서 파송하는 목회자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교단이나 노회에서 아무런 힘을 개교회에 발휘할 수 없다. 이유는 각 교회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지역교회는 상급 기관이 말을 안 들어도 그만이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미쳐서 날뛰어도 막을 방법이라는게 제명 시키는 것 밖에는 할수 없는데 이것도 제명 되기전에  나가서 독립교단을 만들고 활동해 버리면  뭐 실제로는 막을 길이 없다. 

또한 이정도 막 나가는 목사는 이미 교인들을 자기손안에 넣고 자기말만 듣도록 세뇌시켜놓고 가스라이팅 해 놓아서 담임목사 말 외에는 듣지도 않는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이단으로 가면 온 교회가 이단으로 갈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는 사실 교인들이 무지해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봉사나 헌금 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다고 말을 안해도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게 사명이고 교회를 지키는게 사명이고 헌금하는게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사명은 이런 게 아니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여기에 기도를 붙여 넣었다. 목사들은 이렇게 교인들을 자기 손 안에 넣고 교모하게 성경의 진리를 비틀어 가면서 설교한다. 


영지주의자 들 같이 만들어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교회 밖은 위험한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도 응답이 없으면 정성이 부족해서 더 기도하라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고 성도가 잘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개신교는 개독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같은 기독교를 줄여서 개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신교 한국교회에서  교회봉사, 헌금, 성경, 기도 빼면 뭐가 남을까 생각해보기 바란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야라고 전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그걸 전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인 교회가 그자리를 넘보지 말아야 한다. 개신교회는 자영업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목사가 자기 월급을 만들어서 종교 장사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자영업자다.  우리가 내는 헌금은 수입의 전부이기 때문에 헌금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고 대형 교회가 되어서 안정적인 목회를 하겠다는 이유를 빚을 내서 건물을 건축한다. 

 한국 교회가 수십년간 한 일은 교회 건물 짖는 일이었다. 그 결과 대형 교회 돈 많은 교회가 탄생했는데  그로 인해 목회자는 거금을 받고 일하는 돈 잘 버는 직업이 되었다. 

 

그래서 순수성을 잃은 개신교회가 다시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건물 없는 교회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만 없을뿐 개선된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돈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담임목사가 교회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조직화 하고 단속해야 한다. 1인 담임목사에게 주일 설교권 외에는 모두 빼앗아 와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일은 장로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게 하고 돈 지출 문제는 투명하게 공개해서 모든 직원이 어디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감시 기구를 더욱 강화하고 운영하는 장로들을 감시하는 기구도 설치해서 한번 걸리면 바로 아웃 시키는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 져야 한다.


 요즘 같이 양심 없는 목사가 판을 치고 장로들이 교회 돈으로 자기 생생내며 기관들을 돕는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보면 맞다. 

초창기 기독교에서 부터 있었던 이단들

 한국 교회는 이단과 싸워야 하고 이상한 목사와도 싸워야 하는 내분에 빠져있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면 가족 중에 중증 환자가 자꾸 늘어나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소모가 많아서 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운이 지질이 없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초창기 예수교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일어났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런 부분을 지적했던 것이 성경에 써 있을 정도다. 


바울 서신에서 초기 기독교에 침투한 혼란을 야기 시킨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고가 있다. 바울은 이런 이단 사상을 경계하고 올바른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수교(기독교)가 무엇이 다른가 하는 문제를 성립하게 된 것도 어찌보면 이런 이단들 때문이다. 그는 율법주의와 싸워야 했고 영지주의와 싸워야 했다. 

율법주의 : 유대교의 율법을 기독교 신앙에 필수 조건이라 주장하는 사상
영지주의 : 물질세상은 악한 것으로 보고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사상 


오늘날 한국 교회는 기독교 안의 애국주의와  반공주의같은 이상한 사상에 물어어 있는 것과 선을 긋고 결별해야 하는 상황에 왔다. 

애국이 왜 나뻐? 라고 따진다면 나쁘다고 말한적 없다. 반공이 왜 나뻐 ? 하면 그것도 나쁘다고 말한적 없다.  바울시대에서 율법이 나쁜게 아니였고 영을 구분하는게 나쁜게 아니였다. 문제는 이걸 이용하여 살짝 비툴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무리들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종교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는 말이다. 

종교사기

종교사기는 곰팡이균 같은 것이다. 스스로는 생존할 수 없어서 어딘가에는 기생해야 하는데 기독교 이단이 바로 이런 종교사긴꾼들이기 때문에 살짝 비틀어서 기존 교인을 현혹한다. 

현혹하다는 말은  마음이나 정신을 홀려서 갈팡질팡하게 하거나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이단은 예수님을 전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라고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일반 교회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을 강조하더니 그 다시 오실 예수가 교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믿도록 유도하고 그걸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배해 버리고 집단 가스라이팅 즉 세뇌로 이성을 마비 시키기 때문에 종교사기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국심을 가지는 것 공산주의의 싫어하는 것이 바쁘지 않지만 이걸 지나치게 강조하고 애국심이 없거나 공산주의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적대시하고 악마화 하고 처단하고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폭력적으로 변해서 날뛰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애국주의와 반공주의를 정상적인 교회에서 몰아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걸 난 살짝 비틀기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애국시민 여러분 반공주의자 여러분 단신들의 지나친 사상을 전국민에게 오염시키면 우린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폭력이 판을 치고 복수가 판이 치는 세상에 살게 될것이기 때문에 이런 짓을 멈추어야 한다는걸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특히 기독인 여러분 하나님이 이런 행위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그 명분으로 기독인까지 해친 역사를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여인들의 갈취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했던 것도 무지해서 라기 보다는 살짝 비틀어 사익을 취하려 했기 때문이고 천국 티켓 판매까지 하는 타락을 한 것도  종교사기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국 반공한다고 국민을 학살한 이승만 정권과 군대를 통원해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까지 이들은 정말 나쁜 정권이고 국민에게 총을 겨눈 반 국가적 행위를 한 진정한 악이라는 것을 알고 애국심으로 반공으로 이들을 모두 멀리하기를 바란다. 


극우 교회 때문에 교회 전체가 욕을 먹어야 하나

 개신 교회는 왜 이단이 때문에 욕을 먹고 이젠 극우 때문에 또 먹고 있나 싶다.
 교회 다니는 게 창피할 정도다. 

 코로나 때 전광훈과 손현보 두 목사가 교회를 모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정권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방역에 저항했다. 신천지 이단이 이런 행동을 해서 이미 온 국민에게 욕을 엄청 먹은 상태에서 신천지와 똑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방역에 협조해서 코로나의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절대 다수의 교회는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 두 목사는 이때도 말도 안되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더니 요즘은 이 두 목사가 극우 집회와 교회 예배를 구분하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저항의 선봉에 세우며 폭력을 세뇌 시키면서 극우 아니면 다 빨갱이라고 선동질 한다. 여기서도 빨갱이 죽이자 하면서 다 빨갱이로 몰아간다. 

 이런 무식한 집회가 어디있나 싶은데 예배 시간에 손현보는 "이재명은 끝이다"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난 뭔 랩을 하는줄 알았다.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해도 끝에 "이재명은 끝이다"하면 성도가 따라 외친다.  

이런 교회와 같은 교회로 취급을 받는 게 화나날 정도다. 아니 억울하다.   

 작년 10월에는 차별법이 있지도 않는데 반대 집회를 열기도 하고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물론 대다수의 교회는 이런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기독인들이 그래도 유명한 교회 담임목사가 주축이 되어서 진행하는 기도회라고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기도회를 했다. 

그리고 갑자기 지난달 부터 손현보 목사가 전면에 나서면서 탄핵반대 집회를 전광훈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돈을 대는 세력이 있는 거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이렇게 극우에 기독교가 개입을 많이하는 걸 보니 개신교의 운명이 대한민국에서 끝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사들이 미쳐서 날뛰면 성도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한국 교회의 세습 열풍과 개신 교회의 나아갈 길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나온 새로운 교회다 그런데 이들도 덩치가 커지고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권력화 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담임 목사 세습까지 뻔뻔하게 창피함도 모르고 행하고 있다. 교회의 재산을 잘 지키겠다는 일부 교인이 목사의 세습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지만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동조했다.

 편법을 통원해 아들 목사를 추대하고 세습 반대자를 종교적 숙청했다. 도대체 누구로 부터 지켜야 한다는 건지..,말도 안되는 명분이 통한다.


대형 교회의 재산을 지킨다는 명분 

교회의 재산을 새로오는 담임 목사로 부터 지키겠다는 명분은 새로운 목사는 사탄이라는 말인가? 목사로 부터 교회 재산을 지켜야 하는 교회의 현실을 잠깐 설명하겠다. 

 새로온 목사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엉뚱한 사람이 혹시 엉뚱한 짓을 하면 너무 걱정이 된다고 할 것이다그만큼 담임 목사가 이상한 짓을 하면 막을 길이 없다는 반증이다. 제왕과 같은 자리라는 뜻이다.

 이런 생각의 내면에는 사실 장로들이 담임 목사를 견제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담임 목사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들 때문이다. 담임 목사의 탐욕은 교회의 중직자라면 다 안다. 

목사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대형 교회의 재산 지키기는 세습을 동조하면서 마무리 된다. 

 담임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담임 목사가 자기가 유튜버인줄 안다. 컨덴츠 생산은 다 내가 하는데 돈을 내가 다 벌어다 주는데 왜 장로들이 내 맘대로 돈을 못 쓰게 하냐 하고 끝없이 투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교회인데 성도인 장로가 뭔데 막아서냐 하기 때문이다. 

 목사에게 예수가 있나 싶을 때가 많다. 일반 성도는 설교 시간에만 보기 때문에 담임 목사의 사람 됨이나 도덕성, 정식성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런 말 하면 우리 교회 목사님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속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나뻐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도가 사회를 못 따라가서 생긴 병이다. 

 교회가 대형 교회로 발전하면서 돈이 많이 생겼고 그 돈을 어디에 쓰냐고 문제가 생길 만큼 교회가 돈을 쌓았다. 이러다 보니 교회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담임 목사와 싸우던 장로가 생겨났고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와서 또 싸워야 한다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니 그래도 통제는 되는 원로 목사 아들이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다시 말해 교회 담임 목사 세습도 담임 목사와 장로의 갈등도 다 교회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돈을 지키는 노력에서 생겨난 것이다. 

교회가 돈을 지키는 게 명분이 되었다는 것은 "그래 타락했다 어쩌라고 '하는 악마의 태도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교회를 지키는 것이 사명이지 왜 악마 짓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교회를 지키겠다는 게 사명이여도 안되는데 사실 교회를 지키다고 말하면서 돈을 재산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게 문제라는 걸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해가 안될 것이다. 같은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교회를 지키겠다고 싸우는 것도 문제다. 
 교회는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영원히 지키지도 못할 것에 모든 걸 걸고 행패를 부르는 것은 바보 짓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돈을 지키려는 것을 교회로 지키는 것으로 포장지만 바꿨을 뿐이다. 


담임목사의 폭주를 막을 제도가 없다

 가난한 교회는 지킬 재산도 없다. 하지만 대형 교회 이상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1주일에 수 억이 헌금으로 들어온다. 종교 장사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사람이 돈을 벌어다 준다. 방문자가 많을 수록 대박이다그래서 세습은 대형 교회나 하는 것이지 작은 교회가 세습까지 하지는 않는다.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 속에는 교회의 재산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새로 오는 목사로 부터 지키기 위해 현 목사의 아들을 편법을 동원해 세습까지 해야 했을까 생각하면 참 한심한 노릇이다. 제도를 고치면 되는 것이지 세습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담임 목사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항상 타락한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제도에서 제왕적 권력을 가진 담임 목사가 바뀐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만약 이상한 사람이 온다면 재앙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이유는 제어장치가 교회에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해도 노회나 총회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권력 분산이 안되어 있고 안전장치가 없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아쉽게도 현재 교회도 담임 목사의 폭주를 막을 제도가 없다. 있다 해도 힘이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일부 교회에서 재신임 투표를 6년에 한번 하기도 하는데 그거 소용없다. 왜냐하면 깊은 내막을 모르는 성도는 재신임을 찬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임기제다 10년만 있다 자동 퇴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효과적이다. 물론 총회법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서 분쟁의 소지는 남아 있다. 개교회에서 정한 규정은 사실 사회법으로는 효력을 발생할 수 있어도 만약  10년 후에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담임 목사자리가 아니라 위임 목사라는 칭호를 쓰면서 담이목사의 세력화를 견제하고 있다. 사실은 담임 목사라는 말이 더 약한 말인데 실제로는 담임목사라는 말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 성도가 많다.  그 교회를 담당하는 목사를 담임목사라고 하는 것이고 위임목사는 노회에서 파송형식으로 그 교회에 위임된 목사라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담임목사에게 당회장 자리를 안 주고 새로 당회장 행정을 담당하는 목사를 뽑아서 운영하는 교회도 있다. 

이 모든 문제가 교회의 대형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돈이 많은 것도 세습을 하는 것도 재산을 지키기위해 투쟁하는 것도 모두 대형화의 부작용이다.  

 


개신교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의 문제점

 개신교 담임 목사 자리는 교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 막강한 권위와 책임, 마치 왕과 같다고?

담임 목사는 교회에서 거의 '왕'과 같은 존재야. 교인들의 영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건 기본이고, 교회를 운영하고 재정을 관리하는 등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어. 특히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 한 사람의 결정이 교회의 모든 것을 좌우할 정도지. 교인들은 담임 목사를 하나님의 대리인처럼 여기고,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담임 목사의 권력이 너무 커져서 문제가 생기는 일도 종종 발생해.

2. 임기는 어떻게 되고, 혹시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나?

담임 목사의 임기는 교회마다 달라. 어떤 교회는 몇 년마다 재신임을 묻고, 어떤 교회는 아예 종신직으로 보장해. 문제는 일부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자기 자녀나 친척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세습'이 이루어진다는 거야. 이건 교회 내부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인데, 세습을 반대하는 교인들은 교회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세습을 지지하는 교인들은 교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

3. 돈 걱정은 좀 덜 해도 될까?

대형 교회 담임 목사는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사례비를 받아. 거기에 교회에서 제공하는 고급 사택이나 차량, 각종 복지 혜택까지 누리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모든 담임 목사가 그런 건 아니야. 작은 교회나 농어촌 교회에서는 사례비가 적어서 생활이 어려운 목사들도 많아.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목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

4.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크다던데?

대형 교회 담임 목사는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해.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사회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지. 심지어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목사들도 있어. 그래서 일부 목사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해.

5. 윤리적인 문제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일부 담임 목사들의 권력 남용, 재정 비리, 성추문 등 윤리적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해. 교회 내부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개신교 내부에서는 목회자의 윤리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 목회자 윤리 강령을 제정하고, 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

6. 담임 목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담임 목사가 되려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해. 그리고 교단에서 정한 목회 경험을 쌓아야 하지. 담임 목사가 되는 과정은 교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해. 담임 목사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교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해.

7. 담임 목사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사회가 변화하면서 교회의 역할도 변하고 있어. 앞으로 담임 목사는 교인들의 영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회를 사회에 봉사하는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야 할 거야. 또한, 교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거야.

8. 담임 목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담임 목사는 영적인 리더십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 다양한 자질을 갖춰야 해. 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일 거야.

9. 담임 목사에게 기대하는 점은 무엇일까?

교인들은 담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교회를 잘 이끌어주기를 기대해. 또한, 어려운 교인들을 돌보고,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지. 무엇보다 담임 목사가 솔선수범하여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기를 기대해.

10. 담임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할까?

물론이지. 일부 사람들은 담임 목사의 권력이 너무 크다고 비판하고, 일부 목사들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하기도 해. 또한, 교회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어. 담임 목사는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