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과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
어느 조직이나 교회도 조직 안의 불만이나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을 당한다. 이유는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불만과 불평 그리고 수군거림 같은 것이 교회에 해가 된다고 가르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불만이나 불평은 나쁜 기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잖게 표현해서지 악마, 사탄의 주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성도를 나쁘게 묘샤하거나 질책함으로 해서 애초에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이 불만하고나 불평을 이야기 해도 어려서라고 무시하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불만과 불평을 막으면 조직이 행복해 질까? 생각을 해보면 안될까 싶다.
가짜 행복
불만과 불평이 없으니 정말 행복한 곳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만과 불평이 없으려면 욕심이 없어야 한다. 기대가 없어야 한다. 희망이 없어야 한다. 행복해 지는가 ?
불만만 말하는 것, 불평만 하는 것은 정말 문제다. 의도를 가지고 리더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불만과 함께 개선 점을 요구하고 기다린다면 그건 다른 긍정적인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불만만 이야기 하면 안된다. 불평만 하면 안된다. 뭔가 잘못 된 것을 발견했다면 개선 방법을 찾아서 같이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군거림이 아니라 정식으로 토론하고 발전을 위해 나가야 한다.
개선을 위한 건의
개선을 위한 건의를 할 때는 내가 먼저 해보고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나는 다이어트 모임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사 수준의 다이어트 이론을 가지고 있고 그걸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자기 것이 아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도 알았다.
경험해 보고 실천해 보지 않은 이론은 사실 죽은 이론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개선을 건의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천 가능한 것을 실행해보고 차차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써야 한다.
진짜 행복
욕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기대는 품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은 가능성이 안 보일 때 앞을 빛을 보는 추진력이다. 그럼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가지면 행복할까 ?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인에게 행복이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좌절도 있고 실패도 있겠지만 어느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그동안 의미가 있고 마음의 소망이던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은 걸 행복이라고 한다.
사람은 기분으로 산다. 그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일 기분이 좋으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욕심이 없고 마음이 선하면 여러분의 마음에 자비가 있으면 내 것을 융켜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면 기분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욕심을 채워서 행복해 지는 것과 작은 도움이라도 남을 위해 베풀 때 행복해지는 것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잠깐 생각해 보면 안다.
선한 마음은 기분을 좋게 하는 마법이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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