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실망한 자가 교회를 나가는 이유

 주일 예배를 강조하는 목사의 설교에서 감사도 은혜도 축복도 사랑도 없이 그냥 지껄이는 소리만 한다면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지어 정치인을 욕하거나 세상이 저주하는 듯한 소리를 한다면 이런 교회에서 악을 배우면서 싸움을 배우면서 어떻게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에 고민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싶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이 질문은 신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평안과 소망을 얻기 위해 믿음을 갖는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따르기 위함이다. 만약 교회가 이러한 본질에서 벗어나 분열과 정죄를 조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믿음은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고민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건강한 신앙 생활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가르침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랑과 용서,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맺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만약 현재의 교회가 이러한 방향과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①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거나, ②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신앙 공동체를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도는 사실 설교에 실망했다고 교회를 옮기지는 않는다. 이유는 교회는 예배와 가르침 그리고 교제와 전도 그리고 봉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는 사실 큰 비중을 차지 하기도 하지만 어떤 성도에게는 큰 비중이 아닌 경우도 많다.  기독교 서적이나 유튜브를 통해 좋은 설교 말씀을 접할수 있기 때문에 대체가 가능한 게 현실이다. 

선생님이 싫다고 학교를 안가겠다고 하는 초등학생 수준이 목사 설교가 싫어서 교회 옮기겠다는 소리하는 것이다. 길게 보면 목사도 교체 되거나 바뀔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기다리면 된다. 인내의 열매는 그래서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선종하자 각국의 매스컴에서는 그가 삶을 재조명하며 그의 선종을 안타까워했다. 가난한 자의 친구였던 교황이었으면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한국을 방문하실 때 하기도 했다. 이 말은 고통 받는 이를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곧 방관이나 동조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뉴스를 통해 우리는 고통 받는 전세계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사회적 약자이거나 난민, 가난한 사람들 억압 받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특히 종교인으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교회라는 조직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우 검소한 분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장례식도 화려하지 않게 하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 놓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헌신과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가다. 

 어디에나 어른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따뜻하고 배려심 있고 소외되거나 아픈 자들을 위로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천주 교회에서 개혁 교회로 나온 오늘날 개신 교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기는 참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전체 재정의 약 1% 좀 더 쓰는 곳은 5%, 정도 순수한 구제를 위해 개신 교회들은 돈을 사용한다.이렇게 말하면 반성하기 보다는 아니 다른 지역 교회를 돕는 것도 구제고 선교도 구제고 다 구제하고 할 것 같다. 교회가 구제 기관도 아니고 어떻게 더 잘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태도에서, 말에서 "좀 더 교회가 노력해야죠 죄송합니다" 기대해 보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이미 개혁 교회는 성공 지향적인 곳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축복을 더해주셔야 은혜를 더 주셔야 큰 교회 만들죠" 하면서 말이다. 큰 뜻을 품으려 하기 보다는 돈 많은 교회를 꿈꾸는 목사, 장로, 성도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설교로 소외 받은 사람들을 위해 헌금하고 기도하자고 해도 호응이 별로 없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교회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힘들다. 

 강 건너 불 구경을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남의 불행을 재미있게 여기거나, 방관하는 냉정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하는 속담이다. 예를 들면 경기가 어려워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는데 돈 많은 일부 사람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니거나 오히려 고가의 자동차나 명품 가방이 더 많이 팔려 나갔다는 뉴스를 듣게 되는 경우처럼 전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사회는 지탄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이런 사람들을 동경하는 듯한 사람도 많아 지고 있는 것 같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회 참여와 정치 참여 때문에 모든 교회가 함께 의구심과 지탄을 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교회가 너무 침묵하므로해서 오해를 키우고  방관한 것이 곧 동조자로 의심 받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의 침묵은 항상 위험한 것이다. 개신교회 안에는 어른 교회가 없다. 그 큰 어른이 한마디 하면 싸움도 멈추고 말하고 행동하던 것을 모두 멈추고 돌이키고 자숙해야 하는데 그런 어른이 없다.   




부활

 부활(Resurrection)은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다양한 문화, 종교, 철학에서 나타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기독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기독교에서의 부활:

  • 핵심 교리: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 하나입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 의미:
    •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 예수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상징합니다.
    • 기독교 신앙의 근거: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 (고린도전서 15:14)라고 말하며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신자들의 부활 소망: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자신들도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습니다. 이를 '몸의 부활'이라고 표현하며,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 성경 기록: 예수의 부활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빈 무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증언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 부활절: 기독교에서는 매년 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지킵니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의 부활:

  • 윤회 사상 (불교, 힌두교 등): 죽음 이후에 영혼이 다른 육체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으로, 기독교의 부활과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는 개별적인 존재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고대 신화: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 등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들의 이야기가 여러 문화권에 존재합니다. 이는 생명의 순환, 재생, 희망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 샤머니즘: 일부 샤머니즘 문화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다시 현세에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형태로 환생한다고 믿기도 합니다.

철학적 관점:

  • 영혼 불멸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은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하며,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부활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유합니다.
  • 현상학: 일부 현대 철학에서는 부활을 단순히 생물학적인 재생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나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다양한 믿음과 해석을 담고 있는 개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핵심 교리를 나타내며,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는 윤회, 환생, 신화적 상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파면된 윤석열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헌재의 결정으로 대통령에서 파면된 윤석열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이번 비상계엄을 통해 얼마나 나쁜 짓을 하려했는지 재판을 통해 증언을 통해 밝혀지면서 국민은 섬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불법적인 비상계엄으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살해하거나 감금하여 지워버리려 했던 계획들이 밝혀졌고 나라를 망치고 후진국으로 만들더라도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자임을 보았습니다.

이런 짓이 실패한 이후에도 헌재에 나와서 2시간짜리 야당의 폭거를 알리는 계몽차원이였다는 거짓말로 판사들을 속이려했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자가 대통령자리에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개탄스러우나 스스로 파멸에 길로 나가서 크나큰 어려움을 당하였으나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려드리고 감사합니다.

윤석열이 재판을 통해 죄값을 치루고 반성하며 남은 인생을 살게 하여부옵소서

그래서 대한민국에 다시는 미신을 숭배하고 믿으며 그들의 지시와 인도에 따르는 우매한자가 고위 공직자 자리에 않지 못하게 지켜주옵소서


이번 사건을 통해 국힘의 내부에 침투한 신천지와 사이비 전광훈과 손현보도 죄가 들어나 재판정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게하소서


아직도 저희 나라에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려는 사이비와 이단 그리고 욕심 가득한 목사들이 득실거립니다.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신앙이 없도록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잘못된 목사를 구분하게 하시고 거짓 된 자를 구분하는 명철과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인정되고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전하여지게 하옵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와 교회의 자세에 대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땅의 양심 있는 시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오늘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전원 일치, 8대 0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선고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절차적 정당성과 사안의 중대성을 모두 인정하며, 그 누구도 이 결정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이번 결정은 국회의 헌법적 권한과 국민의 뜻이 일치한 역사적인 판결이며, 정창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탄핵 소추인단의 정당하고도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그를 끝까지 변호하던 정치세력은 이제 헌법과 민심 앞에서 완전히 패배하였습니다. 국회에 군을 동원하려 했던 시도, 그에 동조한 세력들은 내란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국민은 이번 일을 통해 그들의 본색을 분명히 보았고, 충격과 함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정치권은 다음 단계로, 대선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각 당의 대표와 국회의장, 총리까지 국민 앞에 나와 질서를 호소하고 있으며, 외신들 또한 대한민국이 다시 법치와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교회의 자세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 교회는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특정 정치세력과 지나치게 밀착된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전광훈 목사, 손현보 목사 등 일부 지도자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정치적 극단주의를 선동한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괴물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인간의 권력을 좇았던 그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헌재의 판결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교회를 향해 주시는 준엄한 경고라 믿습니다.

둘째, 우리 교회 안에 정치적 극단주의에 휘둘린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을 품되 분명하게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태극기만을 신앙의 상징처럼 여겼던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우리의 길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제공하되, 끝내 진리를 거부하고 공동체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권면과 필요한 경우 출교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치가 아니라 복음으로, 권력자가 아니라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이 나라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또한 교회의 정결함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더 이상 정치에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하는 교회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죄를 먼저 인정하고 회개할 때, 이 땅에 진정한 치유가 시작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