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면 싸우는 목동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늘도 교회를 다녀왔는데 아무 기억이 없다면 잘못된 것일까?
뭐야 또 교회 이야기야 재미없어하고 벌써 나가버린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뭐!, 매주 그러는데 뭐!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기독교의 복음은 아주 간단한 것인데 30~40년 믿음 생활을 해도 대를 이어서 대대손손 교회를 다녀도 그 어느 경지에 도달한 그리스도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뭔가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목사와 장로들은 매주 모여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자신의 의견이 무시된 목사나 장로는 감정을 섞어가며 분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목동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한 목자로 표현된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서에 예수님이 본인이 선한 목자라고 표현한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삯꾼이 비교되면서 간혹 삯꾼 목사에 대한 이야기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건 아마도 교회의 담임목사를 선한 목자로 착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같이 되고 싶은 목동 담임목사는 신의 대언자인 것 처럼 추앙받고 존경받아 오던 전통으로 스스로도 아니라고 하면서 선한 목자인 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제부터는 정 그렇게 표현하고 싶으면 선한 목동으로 표현했으면 한다. 목자는 예수님 목동은 담임목사 이렇게 정의하자. 그럼 혼선이 없을 것 같다.
선한 목동(삯꾼) 담임목사
목동 담임목사는 삯꾼이다. 아니라고 하니까 자꾸 이상한 것이다. 삯꾼 목사 맞다. 삭꾼이 다 나쁘냐 아니다. 사례를 받는 목사가 삯꾼 목사다. 꾼이라는 말이 하대하는 말이라면 조금 다른 표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선한 목동(삯꾼) 담임목사를 줄여서 그냥 선한 목동으로 부르자
직장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삯꾼이다. 오너가 보았을 때 말이다. 항상 월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도 삯꾼이기 때문이고 목사들도 사례비가 너무 적다고 말하는 것도 삯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정도 긍정도 할 필요가 없는 기정사실 삯꾼을 인정하자 그럼 모든 게 편해진다.
선한 목동으로 일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선한 목동으로 일한다. 기독인 중에 마음이 선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말만 들으면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목사나 장로 같이 평생을 신앙 생활을 한분들은 말을 너무 잘한다. 그래서 잘 감추고 꾸미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람은 향기로 안다고 할 만큼 품행에서 나오는 느낌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속은 이기적이고 악하다. 사랑으로 시작한 부부사이에도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우기기 때문에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
바울이 로마서 3장 22~24절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목사와 같이 살아가는 배우자인 사모가 정말로 목사를 존경한다면 또는 그의 자녀들이 목사인 아버지를 정말 존경할 인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진짜 선한 목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시유익은 전혀 없오 오직 희생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직장을 다녀도 너무 열심히 하지마 그러다 죽어 이렇게 말해도 요즘도 '노예가 힘든 게 어디 있어 죽으면 죽는 거지'하는 사람이 있다. 없을 것 같겠지만 있다. 드물 것 같겠지만 있다.
하물며 목사가 '나 피곤해~' '나 힘들어~' 이런 말을 한다면 이미 선한 목동은 아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이 말하는 자신은 모든것을 내어주고 죽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